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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사림의 대두
조선의 문물 제도가 완성된 성종 대를 전후로 하여 새로운 정치 세
력으로 등장한 사림 세력은 당시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적극 가담한 공
로로 조정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 세력과 정치적인 대립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림(사림)은 문자 그대로 선비의 숲이란 뜻으로서, 지배 신분층을
가리키는 사족(사족)이란 말의 군집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조선 초
기에서는 중앙 집권 관료 체제의 확립이 추구되는 가운데, 사족 사회
의 일차적인 여망이 관료 곧 대부(대부)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대
부란 호칭이 널리 쓰였다. 그러다가 15세기 말엽 이후로 사림이란 다
른 한 호칭이 사대부보다 큰 비중으로 쓰이게 된다. 사림은 현직 관
인보다 재야의 지식인을 포괄하는 용어로서, 굳이 가린다면 과거의
소과 합격자인 생원 진사층이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림은 훈구 세력과는 출신 지역, 학문 계보, 정치 의식, 역사 의식
을 달리하였으며, 경제적 기반도 같지 아니하였다. 훈구 세력이 대개
개국 공신의 후예로서 기호 지방인들인데 비하여, 사림은 대부분 영남
지방인들로서 그들이 가장 추앙한 인물은 정몽주, 길재 등 고려 왕실
에 절의를 지켰던 영남 출신의 유신들이었다.
조선 왕조 초기의 정치는 왕권의 절대성이 발휘되고 그 왕정을 보좌
하는 관료제 또한 중앙집권적 성향을 강하게 띤 것이 중요한 특징이었
다. 결국 강력한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재야로 물러난
사족들은, 유향소(유향소:향촌의 덕망있는 인사들로 구성하여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규찰하면서 지방 행정에 참여)를 통해서 세력을 키
워나가다가, 비대해진 훈구 세력을 견제하여 왕권을 강화려는 성종의
부름을 받고,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