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⑶ 2차모로코사건(1911년;Agadir Crisis)
① 독일
상황이 이쯤이르자 독일은 크게 당황해졌고 다시 한번 이 삼국협상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2차모로코사건을 일으킨다. 1905년에 프랑스의 우월권을 인정했던 카이저는 지방소요에 프랑스가 2만의 군대를 파견하자 거류민보호라는 명분하에 아가디르에 군함을 파견한다.
② 영국과 프랑스의 반응
영국은 독일의 군함파견은 영국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선언하여 프랑스의 입장을 공개리에 지지하였다. 프랑스는 전쟁보다는 타협을 선택하였다.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임을 독일이 인정하면 프랑스령콩고를 떼어주겠다고 제안한것이다. 원래 전쟁의사가 없고 삼국협상을 시험해보는데 목적이 있던 독일은 프랑스의 제의를 받아 들인다.대신 독일은 차드호 근방의 일부를 떼어준다.(1911년 11월 4일)
③ 결과
이로써 유럽각국은 독일이 힘의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는 비록 군사동맹은 아니었지만,이로써 영국이 믿음직스러운 우방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전쟁의 씨앗은 발칸에 있었다.
⑷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합병위기
① 당시 상황
1878년베를린회의 결과로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1903년에 친러-반오적인 피터1세가 세르비아왕으로 등극하면서 점차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피터1세는 이 지역의 병합을 원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1881년에 세르비아와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친불가리아적이었다. 이것은 베를린회의의 수정과 당사국들과의 합의가 필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