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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公山日記`는 어떤 기록인가.
`公山日記`는 지금까지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록물이다. 이 문헌은 선조 35년(서기 1602년)에 ‘己丑獄事’에 관련되어 公州(公山)으로 귀양을 온 可畦 趙翊 선생이 이곳에서의 생활을 일기체로 쓴 글인데, 귀양에서 풀리기까지의 6년간 생활이 한문으로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강직했던 선비의 유배 생활 기록으로서 그 방면에 관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 400여년 전 우리 공주의 모습을 아는 데도 귀중한 근거를 제공해 주는 희귀한 자료라고 판단된다.
우리가 사는 이 곳 공주는 일찍이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여 백제 시대에는 5 대에 걸쳐 약 60여 년간이나 한 나라의 수도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후 고려 시대나 조선시대에도 국가의 주요 행정 도시로서 자리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조선시대 중엽부터는 관찰사가 주재하는 監營으로서, 또 조선 말엽에는 충청남도의 도청 소재지로서 가히 충남의 제일 가는 도시였었다. 따라서 이 곳 공주에는 그와 관련된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동 문화 유적은 그 잔존량이 아주 적은 편이다. 아마도 백제가 패망한 국가였기 때문에 정복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훼손되어 버린 이유도 있겠고, 그 이후의 역사에서도 잦은 전란과 생존 우선의 조건 아래서 그런 것을 돌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세에 접어들면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또는 살아 남기에 급급한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일부 남아 있던 것들마저 대부분 외지로 반출되어 버려, 정작 우리 지역의 귀중한 전적이나 고문서들을 보기 위해서는 공주 밖으로 찾아다녀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하여 몇 백 년 전의 공주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조차 현재로서는 매우 희귀한 편이다. 그런 가운데 이 `公山日記`는 비록 개인의 사사로운 기록이라는 한계는 있으나 그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래 줄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