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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구려의 불교 수용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의 전래에서 시작되었다는 북방전래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고구려의 경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372년(소수림왕 2년), 전진왕 부견(符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고승전(梁高僧傳)과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동진(東晋)의 고승 도림(道林)이 고구려 승려에게 청담격의(淸談格義)불교의 대표자인 법심(法深)을 소개하는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372년이전에 이미 문화교류의 방편으로 민간경로로 전파되었음을 알게 한다. 이 당시의 왕권은 민중에 대한 지배의 필요성과 자기네 지위를 신성시 해 주던 재래 신앙(자연신과 조상신 숭배)의 기능이 약화 됨에 따라 새로운 지배이념을 필요로 하였다. 그리하여 372년 왕실이 불교 수용의 주체가 되어 중앙 집권적 지배 체재를 정비 하는 데 이용하게 된다. 한편 전진왕이 불교를 전하게 되는 것은 당시 중국 북방을 정복하고 남방의 동진과 대치한 상황에서 후방인 동북방의 견제의 필요에서 고구려와 관계 개선을 위한 문화 교류의 한 방편이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고구려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전진 불교는 도안의 새로운 불교였다. 따라서 고구려의 불교는 민간 경로를 통한 격의적 불교와 왕실을 통한 도안적 불교의 두 가지 형태로 발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 사회에 토착화 되어 민간 사회나 지방 사회의 신앙적인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고 후자는 공식적인 불교가 왕실의 지원 아래 순도에 의해 포교되면서 중앙 왕실이나 지식층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나갔다. 따라서 다른 삼국에 비해서 아주 두드러진 발전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