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①1910년대의 한국사학
합방을 전후하여 사가로서 크게 활동한 것은 최남선을 중심으로 한 조선광문회(1910 ~ 1919 ?)였다. 조선광문회는 우리 고서의 수집과 간행에 전력을 기울여, 때마침 재한 일인들이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조선고서간행회와 대조를 이루었다. 이 학회에는 유력한 국내 지식인 다수가 관여하였다.
한편 최남선이 신문관(1907 ~ 1922)을 통하여 계몽사상운동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던 사실도 유의할 일이다. 후일 그가 한편으로 강렬한 민족주의 사론을 쓰고 한편으로 문화사적 사풍으로써 국사의 대중화에 힘쓴 데는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광문회 회원이었던 박은식도 한국통사를 지어 민족주의 사학에 한 기원을 지웠다.
②1920년대의 한국사학
외세강점이라는 가혹한 현실 아래, 더구나 민족의 혈투의 대가로 일본의 탄압이 표면상은 다소 완화됨에 따라, 1920년대는 언론 기타 문화 전반이 일본강점기 중에서는 가장 활기를 띤 시기가 되었으며, 사학에서도 한국사의 주체성을 되도록 부정 말살하려는 일인연구자들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민족주의사학이 크게 부풀어 있었다.
이 무렵 신채호가 국내 신문에 기고한 <조선사연구> · <조선상고사>는 투쟁적인 민족주의사학의 대표작이었다.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국사학은 각분야별로도 상당한 업적을 나타내었다.
한편 일본이나 더러는 중국에 유학한 연구자들에 의하여 력사과학의 방법이 점차로 유입되었다. 이때에도 여전히 특권을 누리는 일인학자들은 근접하기 어려운 규장각 도서를 자유로이 이용하여 한국사의 령역을 넓혀갔다.
참고문헌
이만열, 단재 신채호의 고대사인식시고, 한국사 연구15, 1977.
이기백, 한국사 신론, 일조각, 1994.
이기백·차하순, 역사란 무엇인가, 문학과 지성사, 1976.
천관우, 한국사의 재발견, 일조각,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