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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투마시크 섬으로 불리우던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어부와 해적들이 주거지로 이용했던 작은 도시였으며 수마트라를 지배하고 있던 슈리비자야 왕국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14세기까지 슈리비자야의 지배를 받으면서 14세기 자바의 마자파히트 왕국에 점령이 되었고 후에는 아유타야 왕국에, 15세기 초에는 말라카 왕국의 일부로 되었으며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인들에게,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던, 시대에 따르는 강자의 손에 의해 다양하게 통치를 받아오던 작은 섬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경위를 포함해 싱가포르의 초기역사에 관하여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말레이 연대기에 의 면 슈리비자야 왕국의 왕자였던 Sang Nila Utama 가 그들의 왕국을 이 지역에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싱가포르라는 이름은 왕자가 섬에 상륙했을 때 사자라고 생각되는 동물을 보고 이를 길조라고 여겨 왕국의 이름을 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싱가`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해 있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를 의미하며 `포르`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슈리비자야는 7세기에 스마트라에 흥하고 13세기말까지 스마트라, 쟈와, 말라야 반도를 지배한 힌두왕조였지만 싱가포르가 하 의 왕국으로 건설된 것은 7세기 아니면 13세기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역세력의 지배투쟁, 또는 풍토병의 만연 등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한 싱가포르를 개척하고 근대도시로서의 기반을 닦아놓은 것은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스텐포드 러플스였다. 싱가포르가 갖추고 있는 천연의 양항, 인근지역에서 배출되는 풍족한 자원과 소비시장, 동서를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요충지라는 지리적인 구조는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