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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때는 빈 궁정 예배당 합창단원으로서 음악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음악교습을 중요시한 왕실 기숙학교에 입학해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우는 한편 13세 때 작곡을 시작하였다.
16세 때 변성기가 와서 합창단 학교를 그만둔 슈베르트는 17세부터 2년 동안 아버지 학교에서 조교원으로 아버지를 도와 일했다. 그러나 19세 무렵 집을 나와 그 후로 친구들 집에서 전전하는 생활을 죽을 때까지 10여 년이나 계속했다.
슈베르트는 평생 고정 직업에 매달린 일도 없고 집이나 재산은 물론 피아노조차 없이 친구집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기타로 작곡을 하였다. 그는 가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탐욕도 출세욕도 없었다. 겸손하고 유순해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슈베르트는 친구들이 많았으며, 화가, 시인, 가수 등 예술가이거나 예술 애호가들이었던 친구들의 모임에서 슈베르트는 이따금 작품을 연주했다. 그 연주회를 ‘슈베르티아데’라고 불렀을 정도로 친구들은 젊은 작곡가 슈베르트의 재질을 인정하고 그를 아꼈다. 슈베르트가 일반 청중 앞에서 공개연주를 한 것은 평생 꼭 한 번, 그것도 생애 마지막 해였다. 만약 친구들과 작은 음악회 ‘슈베르티아데’마저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걸작을 남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양 음악사상 후세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들 가운데 슈베르트만큼 살아 있을 때 빛을 못 본 음악가도 드물 것이다. 베토벤보다 27년이나 뒤에 태어났지만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 해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니, 평생 거인 베토벤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었던 셈이다.
그토록 짧은 일생 동안 슈베르트는 무려 1,000곡이나 되는 곡을 썼다. 그러나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출판된 악곡 수는 극히 적었다. 교향곡은 단 1곡도 인쇄되지 않았고 현악 4중주곡은 19곡 중 1곡, 피아노 소나타는 21곡 중 3곡, 미사곡 7곡 중 1곡, 600곡 이상 쓴 가곡은 187곡만 출판되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