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전민관어사(前民官御事) 이지백(李知白)이 아뢰기를, `태조가 나라를 창건한 후 대를 이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나라를 보위하려는 충신이 한 사람도 없어서 갑자기 국토를 떼어 경솔하게 적에게 주자고 하니 아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청컨대 금 은 보화를 소손녕(蘇遜寧)에게 주고 그의 속마음을 타진하여 보십시오. 또한 국토를 경솔히 적국에 할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선대로부터 전하여 오던 연등·팔관· 선랑(仙郞) 선랑 : 신라의 화랑제도를 말한다.
등 행사를 다시금 거행하고 타국의 색다른 풍습을 본받지 말며 그리하여 국가를 보전하고 태평을 이루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 당시 성종은 중국 풍습을 즐겨 모방하려 하였으며 나라사람들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까닭에 이지백이 이 문제에 언급한 것이다. ―『고려사』권94, 열전7, 서희(徐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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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원년 윤2월에 연등회(燃燈會)를 회복하였다. 나라의 풍속에 왕궁(王宮)과 국도(國都)로부터 향읍(鄕邑)에 미치기까지 정월 망일(望日) 망일 : 보름날.
로부터 두 밤을 연등하였는데, 성종이 이를 번잡하고 소란하며 온당치 못하다하여 없앴던 것을, 이 때에 회복한 것이었다. 2년 2월에 연등회를 청주(淸州) 행궁(行宮) 행궁 : 국왕 거둥시에 임시로 머무는 별궁이다.
에서 설하였는데 이 뒤로부터는 2월 15일에 행함을 관례로 하였다. 문종 2년 2월 갑신(甲申)에 연등하였는데 15일이 한식이므로 이날에 행하였다. 공민왕 23년 정월 임오에 연등하였다. 처음에 태조는 정월에 연등하였고, 현종이 2월에 행하였는데 이 때에 유사(有司)가 공주(公主)의 제삿날이므로 다시 정월에 행할 것을 청하였던 것이다.
―『고려사』권69, 예지11, 상원연등회의(上元燃燈會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