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고 어느 시인의 시는 시작되었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겨울의 매서움 속에 `죽음 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이 있다고 했다. 그 수많은 움츠린 얼굴들의 한 가운데에, 지 금 우리가 다시 비추고자 하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얼굴 역시 수척하다. 목을 감싸는 햇살도, 품에 안기는 햇살도 들지 않는 창살 안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한 지식인의 경건한 숙고가 있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본주의는 왜 무너지지 않고 있는가라고. 그 질문은 수도 없이 많은 씨앗을 퍼뜨리며 이론들의 구 석구석으로 스며들어 갔다. 대중은 왜 여전히 자본주의에 동의하고 있는가 를 물었다. 대중을 새도매져키즘적인 내향적 함몰로 이끌어 가고 있는 이데 올로기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행의 비용을 치러야 할 사회주의 보다는 차선으로서의 자본주의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대중의 현명함을 배 웠다. 이 모든 질문과 응답을 주관하는 그람시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섰다. 바로 혁명이 아닌 패배의 시기에.
그러나 우리는 질문을 조금은 바꾸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무너질 것 같 지 않은 자본주의는 왜 여전히 발에 맞지 않는 하이힐을 신은 듯 뒤뚱거리 고 있는가?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한 기호의 범람과 그 유혹들은 왜 언제 나 그것의 수용자들에 의하여 배반당하고 찢겨지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저 수척해진 그람시의 모습이 혹 우리들의 지쳐버린 삶의 투영일 뿐인 것은 아닌지를 의심해 보기로 했다. 많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그러하였듯 이, 한국에서도 역시 그람시는 패배한 혁명의 이론가였다. 시민사회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gelatinous) 근대적인 확장국가(expanded state)는 아직 존 재하지 않았던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는데 왜 서구에서는 혁명이 실 패하였는가를 물었던 마르크스주의자는 안토니오 그람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