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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인쇄와 탐험의 비약적 발전이 어떤 형태와 시기를 취했는가 하는 관계를 살펴 보면 놀라운 바가 있다. 인쇄와 탐험은 두 가지가 전에도 어느정도 발전했었던 기록이 있는데 하나는 인쇄의 경우 12세기부터 원고의 생산이 크게 늘었고 주제가 세속화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탐험의 경우로서 바이킹이나 마르코폴로 같은 여행자들에 의한 유럽 바깥의 세계에 대한 경험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두 가지가 다 15세기 후반에 구텐베르그의 인쇄기계발명의 효과와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의 발견의 결과로 크게 도약했다. 서양의 발전에서 매우 뚜렷이 나타나는 톱니바퀴 효과는 지식의 축적과 전파를 보다 우월한 방식으로 할 수 있었다는 데 힘입은 바가 크다. 기술변화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곳에서의 활동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끊임없이 기계를 고안하고 실험하는 넓은 계층의 사람들과 때로는 자연을 탐구하는 철학자들도 함께 관련이 되면서 확산되었다. 체제 혹은 기구의 향상은 그 자체가 기술변화의 한 종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같은 체제상의 발달로 인해 얻은 혜택 또한 상당했다. 이런 추세로 1700년이 되었을 때까지는 확실히 기술은 끊임없는 전진의 흐름속에 있었다.
이것은 前산업사회 후반의 유럽, 혹은 어떻든 서유럽의 잉태를 의미한다. 그 유럽은 생산성, 사업방식, 상품, 또 도시의 주거 및 환경이 대부분 어떤 질과 양을 갖게 되었나 하는 면에서 볼 때, 이미 중세에 비해 보다 결정적으로 앞서 있었다. 그 유럽은 커뮤니케이션, 무게와 도량법 및 화폐제도의 통일 같은 눈에 보이는 면에서, 그리고 또 공공질서와 정부가 취하는 조치의 예측가능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면에서, 현대화가 이미 어느 정도 이룩되었으며 또 이루어 지고 있는가를 인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