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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조각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한성기인데 불교가
수용되어 불상조각이 최초로 조성되면서 백제조각에 획기적인 변모를
일으킨 시기이며, 제2기는 웅진기로써 웅진에 수도를 정한 약 60년간인데
중국 남조와 교류하면서 난숙한 불상조각을 수용하여 백제불상조각이
정착한 단계이고, 제3기는 사비기인데 백제의 불교조각이 활짝꽃핀
성기이다.
① 한성기 양식으로써 그 예가 바로 신리출토 금동불좌상이 아닐까한다.
이 불상은 워낙 작고 마멸되어서 정확한 세부형태를 알 수 없지만
사각형대좌 위에 선정인을 하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대좌나 옷주름
등에서 형식화가 꽤진전 되었으며 무릎도 세단이 진것처럼 처리했는데
이것이 옷주름의 표시임이 분명하다. 얼굴은 둥글하면서도 살이 붙어
구김살없이 웃고있는 모습이어서 중국의 경우 460년경의
화평5년(464년)금동불좌상등에서 부터 나타나 태화연간(북위477~499년)에
유행하던것과 비슷하며 특히 대좌나 무릎 신체등의 세부 특징은 태화7년
동불좌상(478년, 산동성 출토)과 꽤많이 닮아 있는데 여기서 더 진전된
510년경의 불상들과 어떤 친연성이 있는것 같다.
② 웅진기는 중국양과의 외교관계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문화를 꽃피웠을 뿐더러 이러한 발전된 문화를 일본에 전파(513년과
516년등)하기도 하였다. 이점은 1971년 무녕왕릉 발굴에 의하여
입증되었다. 웅진시기의 63년은 북방적인 요소를 상당히 없애고 유연한
문화를 정착 시키는 한편 중국남조와의 교류에 의하여 우아한 남조문화를
수용하여 백제특유의 부드럽고 세련된 문화를 창조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주 지역의 사지 가운데 웅진기의 사지가 정식으로 발굴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조각의 대표작들은 분명하게 밝혀진 적이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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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과 조화」, 열화당,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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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불상의 형식과 내용」,『백제의 조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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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조각의 양식과 변천」,『백제의 조각과
미술』,공주대학교박물관,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