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외숙모의 부음을 전해 듣고 광주에 도착한 `나`는 터미널에서 한 여자와 스치게 된다. 흔한 스침 이었으나 `나`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깊은 죽음의 그림자를 읽고 만다. 이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죽음을 애송하기 위한 여정에서 만난 살아있는 죽음이라... `나`는 그녀로부터의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이끌리어 애초의 목적인 문상을 잠시 뒤로 미룬 채 그녀를 쫓게 된다. 아니 그녀의 구원의 손길이 그를 이끌었다는 표현이 더욱 적당하겠다. 이어 완도의 어느 바닷가를 마주한, 횟집을 겸한 여관에 두 사람은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삶으로부터의 도발을 저지하기 위한 파수병이 되어 버린 `나`는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녀가 의식 못하도록 감시한다. 그리고 바닷가로 소리연습을 온 소리꾼들의 판소리를 배경으로 그녀와 `나`의 팽팽한 긴장... 결국 삶으로부터의 도발을 실천할 수 없었던 여인은 `나`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녀는 삶으로부터의 도발은 실패했으나 새로운 삶을 찾아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녀는 이곳 여관에서 수 달 전에 옛 애인과 밤을 보내고 아기를 갖게 되었으나 옛 애인의 변심으로 죽음을 결심하고 이곳을 찾았던 거였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뜻밖에 그녀를 뒤쫓은 `나`와의 정사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몸에 잉태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말을 남긴다.
작가는 아주 흔한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포착한 자잘한 에피소드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일상에서 도발이란 새로운 이미지를 퍼 올린다. 그리고 시적 문체를 통해 작품의 질적 측면을 한 단계 끓어 올리는 노련미를 보인다. 더구나 유연한 글의 리듬과 속도는 단편 소설의 매력이랄 수 있는 단숨에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