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문학은 언어라는 기호를 예술 일반과 같은 약속 아래 사용함으로써 우주를 불러내려는 예술의 한 가닥이다. 줄여서 말하면 언어의 고유한 사용법이 문학이다. …(중략)… 문학에 어떤 낱말 하나를 쓸 때, 그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낱말 모두를 잡아끌기 위한 고리와 같이 그렇게 사용된다는 말이다. `꽃`이라고 썼다면, 그것은 `꽃`이라는, 말의 우주의 그 부분을 튕겨서 말의 우주 모두를 공명시키기 위해서 쓴 것이지 우주 속에서 꽃을 집어내기 위하여 쓴 것이 아니다.(최인훈, 『문학과 이데올로기』, 문학과 지성사, 1980, 333-334쪽)
하나의 낱말을 쓸 때는 그것과 공명할 수 있는 우주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사용한다는 작가가 `탈`이라는 낱말(대상물)을 사용했을 때는 그만한 부피와 무게의 상징을 담고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면 탈이 소설의 무대의 한 가운데로 등장하면서 서사구조를 전환시키게 되는 그 부분을 세밀하게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오토메나크가 불안한 것은 그에게 어떤 판단이나 짐작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자기 세계를 받쳐준 사람인 마야카씨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중략)… 사방이 막힌 우리에 든 짐승처럼 그는 방안을 오락가락 걸어 다녔다.
탁, 하고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에 오토메나크는 그쪽으로 돌아섰다. 벽에 걸려있던 탈이 마루에 떨어진 것이다. 오토메나크가 이 집에 오기 전부터 거기 걸린 채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지니고 있던 나무로 파서 만든 액신(厄神)의 탈이었다. …(중략)… 오토메나크는 소파를 들어다 걸쇠 밑에 놓고 그 위에 올라섰다. 한 손을 걸쇠에 거는데 발이 헛디뎌지면서 몸이 기울어졌다. 휘청하면서 걸쇠를 잡아당겼다. 걸쇠는 사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벽에서 빠져나오고 말았다. …(중략)… 걸쇠 바로 아래, 사람 키 높이만 한 데서부터 벽의 한 부분이 움직이는 것이다. 소리 없이 천천히 벌어진다. 사람 하나가 어깨를 펴고 드나들 만한 출입구가 나타났다.(작품 8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