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은희경의 『빈처』의 남편인 `나`와 아내인 `그녀` 역시 우리 사회 제도의 기본 틀 속에서 요구하는 과정을 충실히 밟아 온 남과 여이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으며 남편은 생활 전선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아내는 두 아이의 양육이란 고된 노동과 남편의 뒷바라지에 전념한다. 이들의 일상은 우리 주위에서 보이는 흔하고 자연스런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자연스러워 보이는 생활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고 그 생활의 실체를 들여다 보면, 우리는 이들 생활의 건조함과 공허함에 이내 실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가와 사회의 근간이라는 가정생활이라는 목적보다는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이라는 수단이 관념적으로 중시되는 제도 속에서 남편인 `나`는 짧은 하루의 대부분을 바깥 생활에 할애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인 `그녀` 역시 두 아이를 보살피고 자잘한 가정 꾸리기로 짧은 하루를 쪼개어 쓰기는 남편인 `나`와 마찬가지다. 직업이라는 것이 가지는 생계 수단이라는 의미 외에 보람과 자아실현의 장이라는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되어서 일까... 우리 사회제도 속의 직업들은 그 구성원인 직업인이 그 직업을 통해 가꾸어 가려는 본질 자체를 소외시킬 만큼 너무도 많은 것을 그들에게 요구한다. 다시 말해 주객이 전도되듯 직업과 가정이라는 수평저울의 기울기가 지나치게 직업 쪽으로 기운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경쟁사회라는 현대의 슬로건은 사람들에게 직업중심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레 관념화시키고 있으며 적어도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자들의 노력을 무색케 할 만큼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꽉 짜인 생활패턴을 통해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