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역사인식은 무신란 이후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문화적 배경이 고려사회 전반에 전개되고 있던 데에 그 토양을 두고 있다.
「삼국유사」보다 150년 가량 앞서 고려문화의 난숙기에 편찬된 관찬사서인 「삼국사기」는 정치제도 중심의 현실문제를 주로 다룬 것이었고, 그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 등의 력사의식은 유교적 정치이념을 토대로 하는 유교적 정치사관이었다. 이러한 유교적 정치사관은 고려전기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편찬사서를 중심으로 지배적인 조류를 이루었다.
이들 관찬사서들이 갖는 유교적 정치사관은 합리주의의 추구라는 긍정적인 일면을 갖는 동시에 「삼국사기」에서 보듯이 고대 전통문화의 이해범위 축소와 사회모순에 대한 인식의 회피라는 문제점도 보여준다. 그런데 고려의 정치가 몽고의 간섭을 받는 시기에 이르면 유교적 정치사관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민족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외세의 압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사관적 력사의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사관을 강하게 반영하는 사서가 「삼국유사」인 것이다.
⑵ 삼국유사의 편찬목적
「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차적인 동기는 ‘유사(유사)’라는 이름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유사’가 사가(사가)의 기록에서 빠졌거나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 표현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등의 기존 사서에 대한 보족의 의도에서 찬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연이 「삼국사기」를 ‘국사(국사)’ 또는 ‘본사(본사)’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가 이를 정사(정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