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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노총의 설립(1946)
그러나 이같은 [전평]의 운동노선은 한국사회를 혁명적 변혁없이 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가게 하려는 미군정당국과 충돌하게 된다.또 군정당국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군정법령 제19호에 의해 파업을 규제하고 생산활동을 방해하는 노동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경찰과 사법기관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억제하려고 했다.특히,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어 한국의 정치 상황이 분단고착화의 방향으로 치닫고, 미국과 소련을 각각의 축으로 한 체제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자 조선공산당과 긴밀한 연계를 갖고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전평]은 미군정과 정면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파진영에서는 [전평]에 대항하는 방안의 하나로 1946. 3. 10. [대한독립촉성 노동총동맹]이라는 우익 노동단체를 조직한다.[대한노총]은 [대한독립촉성 전국청년연맹]이라는 우파 청년단체가 청년운동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조직한 것이다. [대한독립촉성 전국청년총연맹]은 이승만을 총재로 하는 [독립촉성 중앙협의회] 산하의 청년단체였는데, 이 단체는 우파진영이 각종 정치집회를 개최할 때 행동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결성 당시의 [대한노총]은 세력이 매우 미약하여 산하조직이 용산공작소, 경성철도공장, 경성전기 등 15개에 불과했으며, 대중적인 기반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대한노총]의 성격은 매우 정치지향적인 것으로서 기업가를 상대로 한 투쟁보다는 반[공산], 반[전평]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다.따라서 [대한노총]은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는 소홀한 대신 [전평]의 타도에 주력하고 있었다. 동시에 [대한노총]과 한국경찰, 군정당국이 결합하여 [전평]의 조직과 운동을 탄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