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서론 >
1. 신극(新劇)·신파극(新派劇)의 정의
개화기 이후 한국 연극사에서 일본의 신극 발전 과정과 동일하게 그 발전 단계에 따라 신연극(新演劇)·신파극(新派劇)·신극(新劇)이라는 세 용어가 사용되었다.
- 신연극 : 일본의 신연극은 그들의 초기 신파극을 지칭한 데 비해 한국의 초기 신극 용어인 신연극은 판소리를 분창(分唱)한 것과 창작창극(創作唱劇)을 지칭한 것이다.
- 신파극 : 일본에서 처음 쓴 신극 용어로서 구극(舊劇)인 가부키(歌舞伎劇)에 대립되는 칭호로 사용됐다.
- 신극 : 광의적(廣義的) 의미로 이 세 가지 용어가 다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 본론 >
2. 신파극의 시작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로 대거 이민하고,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을 계기로 그 수가 매우 증가하는 흐름 속에서 일본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충무로, 남대문 등지에 일본인 전용 극장이 생기게 되고 일본으로부터 신파극단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거기서 일하던 한국인 임성구(林聖九)가 어깨 너머로 그것들을 습득하여, 1911년 12월에 친구들과 혁신단(革新團)이라는 최초의 신파극단을 출범시킨 것이 우리나라 신파극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신파극(新派劇)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12년 2월 18일자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임성구(林聖九) 일행의 혁신단(革新團) 제2회 공연 광고에 「新派演劇元祖」라 관명(冠名)한 것이 그 시초다.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이 내걸었던 표어는 권선징악(勸善懲惡), 풍속개량(風俗改良), 민지개발(民智開發), 진충갈력(盡忠竭力) 등이었다
1911년 임성구 일행의 혁신단을 스타트로 해서 1919년까지 약 10년 동안 공연 활동을 벌인 신파극단은 대략 20여 개가 되고, 그 내용들은 군사(軍事)·교육(敎育)·의리(義理)·정탐(偵探)·충효열(忠孝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