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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조
조선 후기 시가사의 변동은 먼저 오래된 양식인 평시조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평시조는 정돈된 율격과 세련된 형식미로 인하여 사대부의 관조적·심미적 미의식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장르였다. 그러나 임·병 양란 이후 중세체제가 해체의 징후를 보이면서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세계인식은 더 이상 현실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웠으며 그에 따라 사대부들의 시조도 점차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시조사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담당층으로 대두한 중인층 가객들에 의해 두드러지게 되었다. 김천택·김수장 등이 이 가객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의 평시조는 신분적 한계에 좌절한 화자가 자신의 주체성을 발양할 수 있는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 한편 무명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좀더 민요적 정서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아직 평시조의 형식에 가깝지만 내용상으로는 기존 사대부들의 작품과 매우 다른 정서를 보이고 있다.
사설시조는 18, 9세기를 겪으면서 놀라운 형상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또한 그 내용면에서도 성적 욕망과 열정의 분출로 이전의 장르와는 확연히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조선조는 농민을 토지에 긴박시키기 위한 경제외적 장치로서 유교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속박을 끊임없이 강제하여왔다. 이것은 개체적 자유와 창조력을 억제하고 전일적 사유체계 안에 포섭시켜 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에 주요한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17세기 이후 경제적 토대의 변화에 따른 생산관계와의 모순이 가중됨에 따라 그와 같은 전일적 사유체계는 점차 틈새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조선 후기 문학에서 광범하게 대두한 ‘애정’과 ‘성’의 분출은 바로 그 틈새를 비집고 솟아오르는 ‘개성 해방’이라는 운동적 질량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사설시조가 구현한 건강한 본능과 치열한 열정은 중세적 베일을 뚫고 나오는 현실의 무기였고, 민중의 변혁적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미학적 장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1. 한국문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p.393~463)
2. 한국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3. 한국사연구입문, 지식산업사 (p.341~383)
4. 민족문학사강좌, 민족문학사연구소, 김윤수, 1995 (p.215~267, p.283~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