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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중국 통치
쿠빌라이 칸, 즉 원 세조는 중국법제를 따라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였다. 중앙에 중서성을 두고 행정을, 추밀원을 두고 군사를, 어사대를 두어 감찰 업무를 맡도록 하였다.
중서령은 황태자가 겸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밖에 평장정사와 좌우승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몽골 귀족과 권세가 있던 색목인이 임명되었다.
또한 중서성안에는 몽골 제국 시기의 습속에 따라 단사관을 적을 때에는 10여명, 많을 때에는 30여명이나 두어 황족과 귀족사이의 소송분쟁을 처리하였다.
세조때 삼성제도의 영향을 받아 문하성을 두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채택되지 않았고, 또 상서성을 두어 재정을 맡았던 적이 있지만 폐지되어 1성제도가 되었다. 그리고 중서성 아래 6부가 있었다. 또한 몽골제국은 무력으로 세운 나라였지만 군직은 간단하였다. 그런데 세족때 앞시대를 모방하여 추밀원을 설치하고 중서령과 같이 황태자가 겸임하였다. 그리고 제국 초에는 간관이 없었으나 세조가 중원으로 들어온 다음 그 필요성을 알고 어사대를 두었다. 이러한 어사대부등 중요한 직책은 대부분 친왕(親王)을 직접 임명하였다.
원의 군대는 군정합일의 천호제를 폐지하고 군민분치 정책을 폈다. 즉, 시위군과 진술군으로 나뉘었는데, 시위군은 숙위군으로도 불려 황궁과 수도지역을 지켰던 반면, 진술군은 지방에 주둔하고 추밀원에 의하여 지휘되었다. 그런데 진술군에는 몽고군, 탐마적군(探馬赤軍), 한군(漢軍), 신부군(新附軍)이 있었다. 이들 군호는 별도로 호적을 만들어져 있었으므로 자손들에게 세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