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해방직후, 한국방적업의 생산설비는 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25만추, 직기8640대이고 미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8만추, 직기 969대로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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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한국방적업의 생산설비는 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25만추, 직기8640대이고 미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8만추, 직기 969대로서 1937년에 비교하여 정방기 38%, 직기 20%가 증가하였으며, 동 설비증가는 거의 1940년대에 집중하였다. 따라서 1947년 “조선방적협회”의 설립과 함께 본격화되었으며, 1950년 초에 이르러 완료된 미설치 설비의 재건정비의 실태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적부문에서는 1947년 경성방직의 46만추를 시작으로 1950년 초까지 합계12만 7476추의 설비증설로 총설비 규모는 31만6572추였다. 설비증설의 실태는 ‘조선4대방’ 47%, ‘신흥6대방’이 55%을 각각 점유함으로서 설비증설은 ‘신흥6대방=전시6대방’에 의해 주도되었다.
다음으로 직포부문에서는 1947년 대구방직의 408대를 시작으로 50년 초까지 합계 435대의 설비증설이 행해져 총설비 규모는 9075대였다. 이와 같은 설비 증설 분은 1945년 설비규모의 5%로 47년 이후 혼란과 화재에 의한 파손 철거 및 설비마모와 부품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의도적인 해체에 의한 감소였다. 증설설비의 75%는 ‘신흥6대방=전시6대방’이 주도하였다.
이상과 같이 해방후 한국방적업의 재건정비와 ‘신흥6대방’의 실태는 1940년대 조선에 진출한 일본섬유방적기업과 기존의 조선내 섬유방적기업이 마방적을 중심으로 한 전시적 다각화의 일환으로 신설한 공장과 일본으로부터의 유입된 유휴설비였다. 또한, 전시하의 마방적기업 혹은 마방설비가 해방 후에도 계승되지 못한 것은 첫째, 마방적이 면방적의 전시하의 대체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높은 원가구조와 채산상의 문제, 둘째, 면포수급의 불균형과 가격상승에 기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