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작품의 줄거리에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안요한의 삶이 일차적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맥락 속에 놓여 있는 것은 부 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뭐라고 지칭하든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세속적인 차원과 종교적인 차원을 확연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노력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목격한다. 인간 삶의 전과정에서 순전 히 인간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은 너무나도 많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까지 이르는 삶의 비의를 우리는 여 전히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의 매 고비마다 그것을 이겨내는 인간의지의 본질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 둘러보면 거의 소생 가능성이 없는 불치병 환자의 병이 기적처럼 완치되는 사례도 적지 않고, 과학적인 탐구를 업으로 삼는 사 람들이 뜻하지 않은 환시나 환청, 혹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필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경우도 종종 있 다. 물론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한때의 안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세속적인 삶의 기준으로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강조하지만, 그런 해석이 지나치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익히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서 보듯이, 인간 의 삶은 여전히 신성한 것과의 연계를 잃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연계성은 어 느 때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가능성마저 없다면 우리들 삶은 그 자체로 한없이 단조롭고 무의미한 것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안요한이 자신의 삶을 종식시키려고 마음먹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어떤 초월자(그가 누 구라고 지칭되든 간에)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을 단순하게 환청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