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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마의 세계관은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대적할 수밖에 없다는
동서양의 대결 의식에서 비롯한다. 그는 소박한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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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야마의 세계관은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대적할 수밖에 없다는
동서양의 대결 의식에서 비롯한다. 그는 소박한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인들에게 강요했던
총독부의 통치이념과 일치한다. `영·미의 일본에 대한 태도`가 적대화할
가능성을 예견하면서 그렇게 되면 `조선인도 일어날 날이 온 것`이라고
단언하는 고야마는 전쟁에 조선인이 참여하는 것을 `성은에의 보답`으로
인식한다.
이런 시국적인 인식을 국민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세력으로 좌익운동가들을 지목한 것이 당시 총독부 문헌이었는데, 고야마
역시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전향이라는 술어를 `진실로 국가에
대하여서 반의를 포회하였던 자가 새로이 애국심에 자각하는 것이 정당한
의미`라고 풀이하면서, 이를 각계의 지식인들에게 적극 권장할 뿐만 아니라
거짓 전향이나 전향 자체를 수치로 여기는 풍조에 대하여 강력히 비판한다.
물론 여기서 전향이란 사상적인 면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에서 친일화에로의
변화까지도 포함시키는데, 그 충성도의 목표는 `임전태세의 완료와
응소(應召)의 자세`임을 분명히 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생활혁신을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이 생활의 혁신은 생활의 황민화, 생활의 합리화, 그리고 생활의
임전화(臨戰化)의 3대 강령에 의하여서 하여야 할 것이다.
생활의 황민화라는 것은 사상, 감정, 풍습, 습관 중에 비일본적인 것을
제거하고 일본적인 것을 대입 순화하는 것이다. 예하면 혼상의례의 일본화,
가족·친척 관념의 일본화, 경신숭조(敬神崇祖) 천황 중심의 생활의
신건설이다.([반도민중의 애국운동], {매일신보}, 1941. 9. 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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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민족적 경륜], {동아일보}, 1924. 1. 2∼6.
{이광수전집}, 삼중당, 1962.
{이광수전집}, 우신사, 1979.
김팔봉, [나의 회고록], {세대}, 196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