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③송명이학의 형성
송명리학은 송대와 명대에 발전하고 유행한 학술 사상 체계이지만, 그것의 기본 경향들은 당대 중기에 이미 표현되었다. 당대의 문화와 송대의 문화 사이의 관계는 사람들의 주목을 충분히 끄는 문화 현상이라 할수 있다. 사회사의 관점에서 볼 때, 당대의 구족 장원제와 송대의 평민 지주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사의 관점에서 볼 때, 당대의 번진할거와 송대의 중앙 집권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당대 중엽 이후의 문화는 오히려 북송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 문화 전체의 발전과 학술 조류의 변천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당대 중엽의 중국 문화에는 세가지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새로운 선종의 성행과 신문학운동의 전개 그리고 신유가의 부흥기이다. 종교적·문학적·사상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운동의 출현은 다 함께 중국 문화의 새로운 발전을 추동시켰다. 이 세 형태의 발전은 북송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고, 송대 이후의 문화를 주도할 중요한 형태를 이루었다. 이는 또 당시 지식인들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었다.
확실히 선종, 고문운동, 신유가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고문의 부흥, 고전사상의 새로운 건설은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문화 운동이었음에 틀림없으며, 여러 측면에서 서구의 종교개혁이나 문예부흥과 유사한 특징을 지녔다. 비록 공업 문명과 근대 과학을 기초로 하는 근대화의 체현은 아닐지라도, 서양에서 중세의 정신을 벗어난 것과 비슷한 진보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화적 전환을 ‘근세화’로 부를 수 있다.
당대 중엽에 시작하여 북송 때 안정되고 확립된 문화적 전환은, 바로 이러한 ‘근세화’ 과정의 일부분이었다. 이러한 근세화의 문화 형태는 중세의 정신과 근대 공업 문명의 중간 형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기본 정신은 두드러진 세속성·합리성·평민성이다. 송명리학의 전체적 형성과정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