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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인 노동자의 생활상태 오사카거주 재일조선인의 생활상태에 대해서는 졸고, 「1920년대 大阪 한인 노동자의 생활상」 참조.
재일조선인은 거의 대부분이 도일이전에 농업에 종사했다. 이들은 근대적 산업노동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본에서 하층노동력으로서 일본인이 기피하는 부문에 종사했다. 직종을 크게 나누어보면, 토목노동자, 잡역부 및 일용노동자, 탄광노동자, 공장노동자로 볼 수 있다. 조선인노동자는 경기변동에 직면할 때 가장 먼저 희생이 되었다.
구체적인 취업상황과 노동상태 및 생활상태에 대해 살펴보자. 조선인노동자의 일본취업은 모집방법에서부터 여러 폐단을 낳고 있었다. 이러한 폐단은 1918년이후 일본의 각 회사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적 노동브로커를 한국에 파견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강훈덕, ꡔ일제하 농민운동의 일연구ꡕ, 경희대 박사학위논문, 1989년, 127면 ; 金贊汀·方善姬, ꡔ風の慟哭 - 在日朝鮮人女工の生活と歷史ꡕ, 田烟書店, 1977년, 41면 ; 金贊汀, ꡔ朝鮮人女工のうた - 1930年岸和田紡績爭議ꡕ, 岩波新書, 1982년, 30면.
조선인노동자의 임금체계는 월급제·일급제·청부제가 있지만 임금이 월급으로 지급되더라도 노동조직은 거의가 청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金贊汀, ꡔ朝鮮人女工のうた - 1930年岸和田紡績爭議ꡕ, 85-86면.
동아일보가 소개한 新瀉현 新越수력발전소 기사를 참고해보면 당시 노동조직은 5 - 6단계의 청부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ꡔ동명ꡕ 1922년 9월 3일자 「기괴망칙한 新潟縣사건의 진상」.
즉 회사가 공사청부업자에게 공사를 청부하고 청부업자는 다시 소청부업자에게, 그리고 소청부업자는 組頭(또는 小頭)에게 청부를 맡겨 공사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