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또한 유신잔당은 민주화의 열망을 관제언론을 통해 ‘폭력과 사회적 혼란’으로 규정하고 본격적 대응작업에 나선다. 이어 5월 9일 서울근교에 공수부...
본문/내용
또한 유신잔당은 민주화의 열망을 관제언론을 통해 ‘폭력과 사회적 혼란’으로 규정하고 본격적 대응작업에 나선다. 이어 5월 9일 서울근교에 공수부대를 집결시켰고, 12일 전군경계 태세 지시등으로 5.17쿠데타 준비를 진행해 나간다. 이러한 군의 움직임에 대해 김대중, 김영삼등 정치가는 ‘군의 정치개입 불용’의 경고를 하고 순수재야는 정국관의 차이와 소시민적 기회주의의 노정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한다. 한편 노동자들의 지금까지 축적된 경제투쟁 역량과 학생운동의 민주화 운동 역량이 노골화되는 군부와 유신잔당의 반동화에 직면하여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80년 5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전국 각 대학에서는 ‘계엄철폐’, ‘정치일정단축’, ‘유신잔당퇴진’등을 요구하면서 가두시위 및 교내농성을 벌였으며, 신현확, 전두환, 최규하 등의 화형식을 거행하는 등 치열성을 더해갔다. 그리하여 5월 15일 학생 10만, 시민 30만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 시국성토대회를 갖고 투석전을 벌이며 시위를 감행, 민중의 민주화 열기를 폭발시킨다. 결국 전두환을 비롯한 유신강경파들은 고립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5월들어 폭발적으로 고양되어온 민주화 운동에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5.17쿠데타를 감행한다.
3. 전남및 광주지역의 특수성
박정권에 의해 추진된 대외의존적 근대화 정책은 미국, 일본 자본에의 종속, 기층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 그리고 지역간·계층간 불균형 심화의 과정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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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을 뒤흔든 60대사건」, ꡔ신동아ꡕ, 동아일보사, 1988
구로역사연구소, 『바로 보는 우리역사』, 거름, 1990
공병훈 외, 『한미관계 재인식』, 두리, 1990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엮음,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잎,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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