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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생기게 되면 기사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역사의 기원이다. 역사의 본래의 효용은 과거의 인류생활의 과정을 기억하여 있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역사는 문자에 의한 기록이 있으므로 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기록이 없을 때에 말로 전하던 구비 전설도 역사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생각해보면 상고에 있어서 기록서책 등의 역사의 출현은 그리 빠르지 않지만 구전·구비적인 역사의 존재는 매우 오래전부터라고 생각된다. 중국상고에 있어서 문자가 없을 때에 결승, 즉 새끼의 매듭에 따라 기억하기 편하게 하거나 의사를 소통하였고, 또 후세의 성인들은 결승 대용으로 서계 즉 사물을 표시하는 부호로서의 문자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결승의 법은 중국 최고의 기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후한의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史, 記事者也”라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본령이 기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史”자가 언제부터 있었는가 삺펴보??“史”자는 은허에서 발견된 구갑수골에 쓰여져 있는 문자 중에서고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史”자는 은대부터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史”자에 대하여는 여러 학자들이 구구한 설을 주장한 바가 있지만 중국 최고의 기사를 “서”라고 하고 주로 그 명칭을 사용했고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존칭하여 『상서』라고 하고, 또 이것을 존중하여 『서경』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 “서”는 중국 최고의 역사인 것이다. 하지만 사학사에서 “史”란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史”가 아니다. 사학사에서 “史”는 사관을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사관이라고 함은 세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기록인을 주로 지칭하고, 둘째 무당과 흡사한 의미이고 셋째 천문을 관장하는 경우를 함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