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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구걸하는 사람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AI 물론 딱해도 자신이 노력하여 돌파구를 찾지 않고 구걸을 한다는 것은 `흥부와 놀부`에서의 무능력한 흥부와 다를게 없다. 자신의 장기를 살린 기술의 연마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같은 능력주의 사회에선 능력만 있다면 취직이 안될리가 없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선행되는 건 그 당사자들의 노력이다.
이런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과연 옳을까? 난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그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하나씩 차근차근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은 구걸을 할때 그들에게 돈을 줌으로써 그들의 자립심을 점점 엷게 만들기 때문이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만일 구걸로 인해 괜찮은 수입을 올린다면 그들은 그것에 안주하여 다른 일을 할 생각을 안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건 국가적 차원에서나 개인적 차원에서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으로는 한 사람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없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특기나 적성을 살리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걸인에게 돈을 주는 것은 결국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데 있다. 그들은 구걸한 돈으로 단지 하루하루를 연명해 갈 것인데 이는 그들이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옛말에도 고기를 주지말고 그것을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다. 설령 구걸하여 괜찮은 수입을 올린다고 해도 그들은 그 쉽게 버는 돈의 맛 때문에 구걸을 그만 둘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걸인에게 돈을 주´A 것은 그들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므로 지양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구걸하는 사람을 돕는다기보다 그들을 관리하는 조직에 돈을 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신문에서도 대서특필 되었다 시피 어떤 앵벌이 들은 조직에 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