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남명의 학문은 크게 박문약예·하학상달·거경집의(경의협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모두 실천궁행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거경집의는 성리학의 영향이 강한 것
으로 보이지만, 그것과의 차이점도 없지 않다. 그의 학문은 당시의 다른 어느 학자
들보다도 원시유학에 접근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학문적 성장과정
남명은 가정에서 독학으로 수학하다가 20세 무렵 성운·성수침과 교유하면서 노·
장학에 심취하였다가 25세에 산사에서 {성리대전}을 읽었고, `이윤의 소지에 뜻을
두고 안자의 소학을 배워, 나아감에 한 일이 있고 들어 앉아서는 지킴이 있게 한다.
대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니 나아가서도 한 일이 없고 들어와서도
지키는 바 없다면, 뜻하거나 배운들 장차 무엇하리`한 노재 허형의 말에 연대오
한 나머지, 과업을 버리고 기질을 변화시켜 오로지 진리탐구에 뜻을 두었는 바,
사서·오경을 비롯하여 주·정·장·주의 성리설을 탐독하고 학문의 목적을 알게
되어 다시 성리학으로 학문의 성격을 바꾸게 된다. 그는 타고난 기질과 성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한 적이 있다.
나는 애초에 태고난 자질이 매우 둔한 데다 사우들의 규계도 없어서,
오직 남에게 오만한 것으로 고상함을 삼았다. 사람들에게 오만하였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오만함이 있어서, 부귀와 재리를 보면
마치 지푸라기나 진흙처럼 멸시하였다. 사람됨이 가벼워 진실되지 못하고,
호쾌히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팔을 걷어부치기도 하였으며,
항상 세상사를 잊고 살 듯한 기상이 있었다.
이 어찌 돈후·주신·박실한 기상이겠는가?
이는 겸사가 섞인 것이라 하더라도, `오물위고` `호소양비` `유세지상`등은 그의
타고난 기질 또는 성품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