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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적 제약을 들 수 있다.
한국정치 50년은 이데올로기 제약의 역사였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한국의 존립이 결정되었으며 그 이데올로기에 기여적인 정치체로 복무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요구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성격은 해방정국에서 빚어진 현상만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한국 정치사의 전반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불연국가(佛緣國家)를 주장했던 신라와 불교왕국으로 자처했던 고려, 그리고 소중화라는 이름에 값할 정도로 성리학적 규제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정치사 그 자체는 실체없는 관념의 구속성, 즉 이데올로기의 허위적 논리에 지배받는 정치사회로 한정되었다. 즉 지배 이데올로기적 규제로 정상적인 정치 사회의 발전이 차단되는 정치체였다.
제2차대전의 종결과 그 뒤 한반도에서 전개된 정치상황은 이념 갈등을 주조로 했으며,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민족과는 무관한 강대국 패권주의의 논리적 경쟁에 불과했다. 공산주의도 엄격히 말해서 러시아의 세력 팽창을 위한 제국주의적 이념이었으며 자유민주주의도 미국식 자기 논리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정주(程朱)의 논리 이외에는 어떤 주장도 사문난적으로 규정했던 조선조 성리학자의 교조성이 해방정국 이후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그들의 본질이었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민족주의가 소진된 강대국 패권논리로서의 지배이데올로기의 난무장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이데올로그들에게는 한국이 전제되기보다는 이념이 우선되는 실로 이념을 위해서라면 한국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을 것처럼 실로 실체없는 허상의 관념에 의한 정신적 종속성으로 전락하였다. 국가발전이나 국민의 사회 통합과는 무관한 단지 지배층이나 그 지배층이 연계된 특정 강대국의 영향력 수용을 위한 논리로만 기능했던 것이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그 결과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한국의 정치발전이나 사회통합에 역기능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자기 구속적 기능의 수행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