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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상의 연원
우리가 동학사상의 연원을 추적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단서가 될 만한 사건은 역시 ꡔ을묘천서ꡕ라고 생각된다. 수운의 득도과정에 있어 ꡔ을묘천서ꡕ는 동학이라는 민족사상의 성립을 위한 전조 내지는 실마리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운은 1855(을묘)년 3월에 ꡔ을묘천서ꡕ를 받고, 이듬해인 1856(병진)년 여름에는 통도사가 있는 경남 양산의 천성산 적멸굴로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 위한 49일 기도에 들어간다. 기도 도중에 숙부의 상을 당하여 병진년의 기도가 계획대로 실천되지 못하자 수운은 이듬해인 1857(정사)년 가을에 다시 49일 기도를 단행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859(기미)년 10월에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기도는 계속되다가 경신(1960)년 4월 5일 밤에 드디어 수운은 하느님의 계시(접영강화의 가르침)를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 전개과정은 ꡔ을묘천서ꡕ가 종교적 차원에서 새로운 하늘이 열렸다고 할 수 있는 대 사건, 즉 경신년의 득도를 위한 직접적인 계기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ꡔ을묘천서ꡕ 사건을 자세히 검토해 보는 것은 동학사상의 성격과 연원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능화는 동학의 창도경위에 대하여 수운이 “금강산 유점사에 있는 도승을 만나 그에게서 천서일권을 얻어 산천에 기도하였더니 옥황상제께 통천대도를 얻은 것” 이능화, 앞의 책, 324 쪽 참조.
으로 서술하였다. 이능화의 이 서술은 ꡔ수운행록ꡕ과 「몽중로소문답가」 등을 참고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ꡔ을묘천서ꡕ 사건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은 아마도 ꡔ도원기서ꡕ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