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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나타난 것을 보면 고려조정에 최척경을 부임하게 했는데 그는 제주도 사람이 아니면서 제주도를 다스린 최초의 사람이다. 그 때가 의종 15년이 1161년이고 그로부터 안무사, 부사, 판관, 목사, 만호 같은 벼슬의 관리가, 삼별초의 난 뒤에 원나라의 다루가치가 통치한 한 세기를 빼고는, 이곳에 와서 정사를 맡았다. 그러나 고려의 관리가 백성을 다스리기 시작하고부터 제주에는 뜻하지 않았던 民亂과 소요가 일어났다.
의종 22년인 1168년 11월에 일어난 양수의 난을 비롯하여 신종 5년인 1202년의 10월에 번석의 난이, 원종 8년인 1267년에 문행로의 난이, 충숙왕 5년인 1318년 3월에 사용과 김성 일당의 난이, 공민왕 5년인 1356년 10월에 목호 가?적홀과 고탁 일당의 난이, 공민왕 11년인 1362년 8월 목호 고독불화 일당의 난 이, 공민왕 21년인 1372년 3월에 목호 석가을비 일당의 난 이, 우왕 1년에 차 현유일당의 난이 일어났다. 이 난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가 고려의 관리거 탐라를 다스리기 시작하고부터 그들의 폭정에 항거하여 탐라인들이 뒤에 제주에 왔던 원나라의 목호들이 원나라가 망한뒤에 명나라가 마필을 헌상하라고 하자 이에 항거하여 일으킨 반란들이다. 폭정에 항거했던 민란들은 그 원흉인 관리들이 쫓겨가고 그 대신에 새 수령들이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면 민심이 가라앉아 그 주모자들을 처형시키고 나면 진압되었다. 그러나 목호들이 일으킨 반란에서는 목사와 판관과 심지어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도순문사 같은 이들이 피살되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공민왕 23년인 1374년 8월에 도통사 최 영이 전함 314채에 군사 이만오천륙벡명쯤을 이끌고 들어와 반란군을 토벌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