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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문화 및 종교부문에 있어서도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적 개조를 실시하였다.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을 창출하기 위한 교육개혁이 단행되었고 언론기관 폐쇄, 출판검열 실시, 외국방송 청취금지 등 자본주의의 ‘퇴폐적’ 문화 잔재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카톨릭교회를 탄압하였고 불교에 대해서는 분할통치 및 체제내로 편입을 모색하였다. 한편, 정부주도의 농민조직과 청년단체, 여성단체 등 각종 사회단체가 조직되어 당의 지도노선을 상명하달식으로 전달하였다.
이렇듯 급변한 생활환경 속에서 사회갈등은 이데올로기의 위력에 감추어져 겉으로 표출되지는 않았다. 지도층에 있는 베트남의 학자들이 언급하듯이 “베트남의 통합과정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베트남 통합과정에서 이념갈등은 없었다”는 평가는 적어도 북베트남의 입장에서 보면 표면상으로 이념적 대결 없이 제도적 통일이 신속하게 이루어졌음을 대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추종하는 편이었고 사회주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지도층의 입장에서 이러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점은 남부사람들의 심리적 열등감과 좌절감을 간과한 것이었다. 베트남의 통일은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가 우월한 것으로 인정되어 북베트남은 남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전쟁의 승리자로, 정복자로 군림하였다. 이로써 남베트남 사람들은 그동안 자기들이 지녀왔던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전면 거부당하고 집단적으로 범죄자 취급을 당함으로써 심리적 열등감과 정체성 상실을 경험하였다. 사회주의의 ‘점령’으로 인해 남쪽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국노라는 창피한 느낌을 충분히 심어줄 정도로 남북간의 차별의식은 심각하였다고 한다.
‘해방’(베트남은 통일을 해방이라고 부른다)후 10년 동안 추진된 사회주의 개혁은 사회주의 제도를 급격히 재편하고 단기간의 의식개혁을 통해 사회주의 이념과 규범에 동의하는 통합체제를 구축하고자 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