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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편제의 주목적은 재지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국가적 수세원(수세원)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는 우선 재지세력의 발호를 통제하고 지방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국의 요지에 10정(정)의 지방 군단을 상주시켰는데, 무진주에는 미다부리정(미다부리정)을 설치하였다. 미다부리정이 설치된 미동부리현(미동부리현)은 무진주 직속의 영현(영현)으로서 영산강유역의 요충지인 오늘날의 남평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무진주 영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요충지였던 것이다.
군현을 편제하는데 있어서도, 통일신라는 기본적으로 백제의 옛 군현 편성체계를 바탕으로 하되, 영산강유역 재지세력의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하고 이 지역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십분 감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군현 편성체계에서 현(현)이었던 것이 통일신라 때에 군(군)으로 승격된 다음의 사례들을 통해서 이러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가) 반나부리현(반나부리현)->반남군(반남군)[오늘날의 나주군 반남면]
나) 고시이현(고시이현)->갑성군(갑성군)[오늘날의 장성]
다) 도산현(도산현)->뇌산군(뢰산군)[오늘날의 진도]
라) 아차산현(아차산현)->압해군(압해군)[오늘날의 신안군 압해도]
먼저 반남군의 경우는 왕년에 옹관고분사회의 중심지역으로서 재지세력의 영향력이 비교적 강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현으로 편제했던 것은 이 지역의 재지세력을 억누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통일신라가 이를 군으로 승격시켰던 것은 이 지역 재지세력의 현실적 영향력을 다시 공인해준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다. 다음에 갑성군이 군으로 승격된 것은 노령산맥을 경계로 하고 있는 무진주와 완산주(완산주)[전북 지역]를 연결해주는 요충지라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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