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신라 국학의 교육과정이 그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교재가 외국어 원전뿐이었으니 그것을 교육하는 방법이 교사 중심의 주해와 설명, 곧 주입식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어교육에서 학생이 할 수 있는 학습 방법도 오직 독해와 암기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임이 예나 이제나 다를 바 없다.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관리해 온 지배 계층의 사람들은 중국의 문화를 속속들이 담고 있는 저들의 고전을 깊이 익히는 것이야말로 당시의 우리 문화를 드높이고 왕조 사회를 다스리는 데 가장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학교교육에서 가르치는 그대로 본떠서 교육과정을 짜고 교과목을 잡아서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판단은 왕조시대의 옛 학교교육이 이어진 일천수백 년 내내 왕조는 바뀌더라도 거의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그런 교육의 역사가 이 지배 계층 사람들의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갔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저들의 정신은 끊임없이 중국을 바라고 그리며 제 삶의 바탕에서는 떠나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삶은 벗어나야 할 굴레로서 갈수록 낮추어지고, 중국의 삶이야말로 받아들여야 할 이상으로 자꾸 드높여졌다. 우리의 문화와 중국의 문화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녔기에 달라야 마땅한 것이 아니라 중국은 진보하였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다르다고 보았다. 문화가 다른 것은 우리가 진보하지 못한 까닭이니까 어떻게든지 우리도 진보해서 중국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비록 땅덩이는 작더라도 중국과 같은 모습의 세상을 만들어 이른바 ‘소중화’를 이루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자신의 삶은 버리고 남의 삶을 가르치고 배우려고 애쓰던 것이 우리 왕조시대 학교교육의 변함없는 과정이며 방법이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학교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삶과 고향과 나라를 버리고 몸과 마음이 당나라로, 송나라로, 원나라로, 명나라로, 청나라로 멀리 떠나가게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