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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문화권마다 각기 다른 미의 기준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미(美)`에 대하여 <철학사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험 삼아 두꺼비에게 미가 뭐냐고 한 번 물어보라. 아마 그는 돌출한 두 개의 커다란 눈, 귀 밑까지 찢어진 커다란 입, 노르께한 배를 뒤뚱거리는 암 두꺼비를 가리키며 그것이 미라고 할 것이다. 다음은 아프리카 흑인에게 물어보라. 그는 미의 기준을 번들번들한 검은 피부, 파묻힌 눈, 납작코를 들 것이다. 악마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미란 두 개의 뿔, 갈퀴 같은 앙상한 손가락, 그리고 엉덩이의 꼬리라고.`
결국 미란 상대적이기에 논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은 흔히 유행과 지역에 따라 결정된다`는 파스칼의 말처럼, 미의 가치는 상대적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화권에서는 절대적 가치로서의 기준이 있는 경우가 많다.
고대 서양세계에서는 대체로 풍만하고 관능적인 여인이 미인으로 대접받았으며, 하얀 피부·파란 눈·금발을 모두 갖춘 여인이 미인의 표준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유한 계급의 부인들은 이 조건에 보다 자신을 근접시키고자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영국의 엘리자베드 1세는 납성분이 들어있는 표백 화장품을 지나치게 사용한 나머지 얼굴을 망친 표백미의 희생자로 유명하다.
중세 시대에는 금욕정신으로 인해 미인관이 달랐다. 호리호리하나 야위지는 않은 몸통, 가느다란 팔다리, 쳐진 어깨, 편편한 허리, 귀여운 가슴. 이것이 중세에 제시되었던 미인의 몸매였다. 얼굴 또한 매혹적이고 육감적인 여인은 마녀 사냥의 희생물이 되기 쉽상인 까닭에 화장기 없는 소녀 취향의 얼굴이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귀부인상이 미인의 기준으로 등장했다. 체격은 빈약하고 가슴은 평평하였으며 허약한 여인이 귀부인상의 모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