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플라톤은 이 이데아를 통하여 현실 너머의 것을 생각함으로써 감각이란 것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 짓고 있다. 즉 감각이란 우리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뜨거움을 느끼는 감각은 누구나가 다를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차갑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의 온도는 배후의 세계에 서 있는 것으로 우리가 인식 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인식 할 수 있는 것은 이데아의 모방, 즉 감각에 비추어진 것임을 플라톤은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이데아는 실제로 하나는 아니다. 즉 善의 이데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그 밑으로 여러개의 이데아가 존재한다. 말하자면 이데아는 일종의 계급사회처럼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조금 만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거꾸로 살펴 보았을 때 이데아가 하나의 높은 지점을 가지게 되면 일단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에서 매우 유리하게 된다. 즉 하나의 꼭대기를 모두 지행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를 현대적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 질지 모르나 희람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하였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사물에는 모두 목적이 있다는 것으로 희랍인의 관심은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것, 그리고 이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규칙, 혹은 이 세계의 목적에 있었다. 또한 플라톤이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한 것은 윤리학이었다. 즉 善이라고 하는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 아래 모든 사회 질서가 정리되기를 지향할 때 당연히 모든 것의 위에 위치해야 하는 것은 善이 올 수밖에 없다.
이 善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번역을 하였을 경우 善이 가장 가까운 번역이라 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cosmo, 즉 질서가 가까운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즉 anarchy-혼란-한 상태를 지양하고 질서지워진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바로 idea적인 상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