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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가 살았던 시대는 한말에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 이르기까지 국내, 외적으로 격동의 시대였으며, 마침내 우리 나라는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교육에 있어서도 장구한 세월 동안 유교사상에 젖어 있던 구한말의 교육형태도 일대 전환이 시도되어 근대적 교육제도 및 내용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근대적 교육의 도입을 위한 노력은 대체로 세 방향에서 추진되었다. 하나는 영어학교, 육영공원의 설립 등을 위시한 정부 당국의 노력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민족주의 개화사상가들의 교육구국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이뤄진 학교 설립 및 교육 활동이라고 하겠다.
한서는 이 중에서 민족주의 개화사상가들의 교육활동과 그 궤(軌)를 같이하고 있는데, 한서가 최초로 교육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토목국장으로 있을 때 민영환이 설립한 홍화학교에 초청되어 틈틈이 동국사와 영문법을 가르치며 애국심과 신문화사상을 고취할 때부터 이다. 한서가 그 자신이 처음 학교를 창설한 것은 1906년 양양 군수로 있을 때 설립한 현산학교이다.
현산학교는 당시 교육구국을 목적으로 세운 대성학교 등과 함께 민족주의 사상가들이 세운 근대식 학교의 하나이며 특히 강원도 근대 교육의 효시가 된 학교로 지금의 양양 고등학교의 전신(前身)이다
현산학교 창립의 근본 정신은 안창호의 대성학교가 애국정신에 강한 민족운동자의 양성이고 이승훈의 오산학교가 민족운동의 인재 양성인 것처럼 국권 갱생의 일꾼 양성이었다. 물론 아직 유럽사회와 한문 숭상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이며 첩첩산중인 강원도 지방에서 신식학교를 열고 신학문을 가르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서는 군수인 그가 직접 교사까지 겸하여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공책과 연필을 자비로 구입하여 학생에게 무료로 배부하며 교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