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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역사의 인물은 많다. 그러나 그 중에 법률가는 드물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법률가가 있다면 반드시 후세의 구원을 받는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법률가의 수호 성인이다. 그는 단순한 법률가가 아니라 `통합학문`의 대가였다. 정치학, 외교학, 철학, 문학, 신학 등 그의 이름이 영구히 각인된 학문의 영역은 무수하다. 지성사에서 뿐만 아니라 제도사에서도 모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영국사상 가장 유명한 국왕인 헨리 8세(1509~47 재임) 궁정의 외교관이자 법률가로서 유럽전체의 정치, 외교를 주도했던 사람이다.
흔히 `이상향`으로 통칭되는 `유토피아`(Utopia)1515~16)라는 단어도 모어의 창작이다. 플라톤의 『공화국』, 성 오거스틴의 『신국론』(413~27), 단테의 「군주론』(1308?) 등 앞선 유토피아론을 바탕으로 모어가 품은 꿈을 실은 이 저술은 후세 대가들에게 전승되었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1719),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6),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뉴 아틀란티스』(1624), 에드워드 밸라미(Edward Bellamy)의 『되돌아다보니』(Looking Backward, 1888)등으로 이어진다. 한때 사회주의자들은 모어를 최초의 근대적 사회주의자로 숭앙하기도 했다. 유토피아 문학이 성급하게 쓴 미래의 영신곡(迎新曲)이라면, 반 유토피아 문학은 성급하게 쓴 암담한 조사(弔辭)이다. 올더스 헉슬리(Auldus Huxley)의 『용감한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1949)은 모어가 사용한 장미빛 대신 잿빛으로 화폭의 채색을 바꾼 것이다.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는 …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