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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프랑스군의 복장은 청색이 주조색이 되고 영국인들은 적색이 주가 된다. 한데 과연 당시 실제로 양군의 주조색이 이처럼 명확했을까?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각각 적색과 청색을 군복의 주조로 삼은 건 17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영화에서의 명확한 주조색은, 좀더 먼 시대에 가까운 시대의 상징을 덧댐으로써 알아보기 쉽게 하려는 일종의 관성은 아닐까? 아무래도 전쟁영화에선 일단 피아구별이 명확해야 재미가 있을 테니까.
(프랑스 왕족 카페팅거가 집과 문장색으로 청람색을 선택한 것은 라틴계 국가에서 파랑을 왕의 색으로 상승시키는 데 기여했다. 반면에 북방 게르만족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그 특권을 계속해서 빨강 및 자주색에 부여했다. - 마가레테 브룬스의 「색의 수수께끼」)
어렸을 때 읽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장에서 위기에 몰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대왕의 투구가 페르시아군 장교가 휘두른 도끼에 맞아, 왕의 표지인 흰 깃털 장식과 함께 두 조각이 났다고 쓰여 있었다.
프랑스인들에게도 흰색은 전통적으로 왕의 표지였다. 나폴레옹 전쟁 직후 왕당파에 의해 행해진 광범위한 처형을 `백색테러`라고 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삼색기의 유래에 대해, 백년전쟁 당시 국왕에 대적했던 파리의 부르주아 에티엔 마르셀이 자신이 만든 조직의 성원들에게 기장(旗章)으로 파리의 문장색(文章色)인 청홍색의 두건을 착용하도록 했는데 이 청홍색에 왕실의 백색이 추가되어 이때부터 삼색기가 탄생한 것도 같다고 했다(모루아의 「프랑스사」).
만약 이 설명이 맞다면 삼색휘장에서 평등을 의미하는 백색이 실은 가장 평등과 거리가 먼 유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울러 삼색휘장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다시 보게도 된다. 청·백·적 삼색은 자유·평등·박애가 아니라 애당초 도시 부르주아와 국왕의 공조를 의미했던 셈이다(이는 실제로 1789년 대혁명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지향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