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48년 5월 14일의 이스라엘 건국은 아랍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유태인의 국가는 아랍과 유태인 양자가 모두 자기것이라 주장하는 땅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주로 시리아,요르단,이집트로 구성된 아랍 연맹의 1948년의 공격을 분쇄시켰으며, 1956년에 이집트에 보복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재발과는 별도로, 이스라엘이 그들의 존재를 계속하여 주장하고, 아랍세계가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한 광범위한 교착상태는 지속되었던 것이다.
1967년 6월 6일, 아랍은 이스라엘의 철저한 파괴를 목적으로 중요한 보복을 감행하였다. 이를 6일전쟁이라 하는데, 이스라엘은 보복 공격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고유 영토의 두배에 해당하는 지역을 획득함으로서 아랍에 대항하였다. 이 지역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요르단 수중에 있던 예루살렘, 그리고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시리아와 골란고원이었다.
당황한 아랍 국가들은, 특히 이집트와 시리아는 닥쳐올 포위공격을 준비하기 위해서 재무장을 했다. 이스라엘을 침몰시키기 위한 아랍 국가들의 두번째 노력은 1973년 10월 6일, 유대인 성일인 욤 키푸르(Yom Kippur)에 일어났다. 이번에 아랍인들, 특히 이집트인들은 전쟁을 잘 꾸려나갔다. 그러나, 서구의 대량 공수 물자지원,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의 방어를 지지하였는데, 결국 이스라엘군이 아랍 연합군의 전진을 가로막고 그들이 1967년의 6일전쟁때에 획득한 정복지의 대부분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아랍 세계는, 명백한 불만 없이 서구의 이스라엘 원조를 인정하고 있었는데, 가혹하게 돌변하여서, 오토만 투르크 제국의 붕괴이후로 뭉친 적이 없던 단일체로서의 역량을 보여줌으로서 보복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