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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운 비판과 그 인식기반
『조선사회경제사』의 출간은 특히 일제가 만주침략 이후 사상탄압과 식민지수탈을 한층 강화하고 일제 관학이 조선연구를 독점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저서는 민족적 자긍심과 조선연구 열기를 고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일부에서 백남운의 한국사인식에 대한 비판과 이견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백남운에 대한 비판적 극복은 맑스주의 역사학의 발전에 있어 가장 긴급한 과제로서 간주되었다. 처음 1,2년간 일부 실증적 의문을 제기한 경우도 있지만, 비판은 주로 백남운의 이론적 사상적 관점에 맞추어졌다. 그 비판의 요점은 백남운의 관점이 보편성을 강조하는 ‘기계적 공식주의’이며 따라서 그것은 사적유물론이 아니라 소부르주아적 관념론이라는 데 있었다. 대부분의 비판론자들은 백남운이 사적 유물론을 전면에 표방하게 되었던 1930년대 초의 학계 및 사상상황과 이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보다는 맑스주의 문학의 확립과 관련하여 부각시킨 ‘일원론적 역사법칙’개념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일원론적 역사법칙을 한국사에 적용시키는데 급급하여 한국사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공식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강조하는 ‘조선의 특수성’은 대개 한국사의 정체적 타율적 성격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당시 주목을 받은 한홍수의 한국고대문명 성립에 관한 견해는 다름 아닌 한국사의 중국사에서의 종속성을 반영하는 주제들이고 그것이 그가 말하는 ‘조선적 특수성’의 요체였다. 즉 한홍수가 제시한 ‘조선적 특수성’은 한국 고대문명 성립의 ‘외부적 모티브’였고 그 ‘외부적 모티브’의 실체는 ‘야만의 韓族에 문명의 문을 열어 준 ’문명의 漢族‘이었다. 또한 이들의 입장은 백남운의 입장을 사적유물론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추상화, 관념론적 견해로 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