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 Wilhelm Schlegel (1767~1845)
동생 Friedrich와 더불어 전기낭만파의 중심적 인물이다. 독일 Hannover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부친과 백부도 이름있는 문학가 겸 학자들이었다. 일찍이 괴팅엔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그리고 나중에는 고전언어학을 전공하였다. 한편으로는 이태리, 서반아 등 남방의 문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셰익스피어의 번역도 시작해 보았으나 졸업 후에 쉴러의 잡지에 기고함으로써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1796년에는 29세에 예나대학 강사가 되었고 2년후 1798년에는 동교 부교수에 승진하였으나 나중에 동생 프리드리히가 쉴러와 충돌하게 되어 그와 함께 잡지
을 간행하여 뚜렷하게 낭만주의운동을 전개했다. 1801년에는 아내와 이혼하고 베를린에서 <문학과 미술에 대한 강의>를 행하고 낭만주의을 주창하였다. 1804년 이후에는 <독일론>의 저자 스탈 부인을 따라 불란서, 이태리 등 거의 구라파의 전역을 여행하였다. 한때 그녀와 함께 쥬네브의 호반에 체재하기도 하였으며, 1812년에는 부인과 함께 영국에 건너갔다가 다시 스웨덴 황태자의 비서도 하였다. 그간 1808년에는 빈에서 문예강연을 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것이 나중에 <극예술과 문학에 대한 강의>라는 제목 하에 공간되었다. 그것이 먼젓번의 베를린강연과 더불어 그의 명예를 올린 큰 강연이었다. 1818년 이후는 본 대학에서 문학사와 미술사를 강의하는 동시에 범어(梵語)의 연구에 종사하여 동생 프리드리히와 함께 고대인도언어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대체로 그는 동생 프리드리히와는 달리 균형과 정신의 소유자인 반면 독창성과 창작의 재주가 부족하였다. 그래서 낭만주의운동에 있어서도 주로 프리드리히가 제창한 이론이나 주장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그것을 널리 보급하는 데에 진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