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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교역의 특징
첫째로 남북한교역은 일제하부터 계속적으로 이어져왔던 국내 상업활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이다.
미군정은 1946년 7월 10일 무역법령 제 98 호 「상무부에 무역국 및 상무국의 설치」에 관한 건을 제정하면서, 무역국의 직능 및 임무는 ‘외국무역을 통제하고 허가’하는 것으로 한 반면에, 상무국의 직능 및 임무는 ‘국내상사계획을 수립하고 국내상업상의 일반감독과 통제’를 행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당시 남북물자교역은 상무국에서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남북지역간 교역이 비록 남한지역내 거래와 같이 자유스럽지는 않았지만 국내상업으로 취급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1947년 2월 2일 미군정장관 대리의 남북교역에 관한 다음 발언에서도 남북한교역이 국내상업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남북한 교역은 양지역간의 경제 주체들이 절실히 필요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미소군정 입장에서도 점령지역 경제안정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남북한교역은 필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남한지역의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는 1948년 5·14 단전 직전인 5월 13일까지도 자신들을 남북한교역 물자배급 대행기관으로 설정해 줄 것을 상공부장관에게 강력하게 건의 하였던 것도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 사실은 1948년 5·14 단전 직전까지도 남북한 교역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자료로서, 북한지역의 선제적인 남북물자교역 태세에 대한 남한지역 민간경제단체의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초기 38무역을 주도했던 개성 일대의 무역업자들은 밀수물자의 국내조달을 위해 남북한교역의 허용을 요청하고 나섰다.
국내업자들의 이와 같은 요구는 일제 때 형성된 경제구조상 남북이 상호보완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는 필요성 이외에도, 경제면에서의 교류가 본격화되면 정치적인 남북분단 문제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민족적 기대가 크게 작용한데 기인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