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상상의 확대와 심화에 못지 않게 문학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체험의 내면화이다. 허구적 서사물인 소설은 어떤 삶의 양상과 그 삶이 역사적·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어떤 총체적 의미가 있는지를 구조화한다. 이는 유기적 형식을 지향하면서 삶의 총체적 양상을 그리고자 하는 의욕에서 출발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총체성은 다양한 양상으로 그려진다. 르네 지라르는 <보바리 부인>을 분석하면서 삼각형적으로 간접화된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심리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있다.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변화하는 시대에서 그 시대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삶이 총체성의 양상이란 의미를 띠기도 한다. 또한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이나 이청준의 <이어도>처럼 인간존재의 새로운 의미부여나 인간에게 유토피아란 것이 무엇인가를 점검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문학교사는 이러한 인간존재의 문제나, 작품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를 내적으로 체험하여 그 삶의 의미를 내면화시켜 자기의 체험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문학교사는 작품의 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이 작품 외적인 텍스트와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삶의 총체성과 다의성을 개방적인 입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문학적인 소양을 갖춰야 한다. 바로 이것이 생산적 상상의 확대이며 심화요, 작품과의 교호작용을 통해 삶과 작품을 재구성하는 문학수용의 역동적인 양상이다.
수용자로서의 교사는 문학이론의 다양한 맥락을 이해하고 통시적으로 부감(俯瞰)할 수 있는 문학사적 안목이 요구된다. 텍스트가 완결된 의미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분석·종합하고 평가하여 이해할 수 있는 비평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텍스트의 인지구조를 미적구조로 형상화한 문학적 의미를 조명하는 문학의 이론적 수용이다. 카이저의 [언어예술작품론], 인가르덴의 [문학예술작품] 등이 미적구조 중심의 이론서라면,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골드만의 [소설사회학을 위하여] 등은 인식구조 중심의 이론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