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리가 벗어나야 할 세번째 통념은 서구는 인권신장에 적극적인 데 반하여 아시아는 인권 가치에 소극적이라는 생각이다. 여성이나 아동의 권리 또는 포르노 등의 구체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서구에서 발전된 남녀 평등, 부모와 자녀의 평등, 포르노의 자유 등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하자. 그러면 인권은 은연중에 서구적인 것인 것처럼 간주된다. 이것을 유교나 불교, 이슬람 등 문화적 전통이 다른 비서구 사회에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이에 대한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 저항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있다. 서구는 이 저항이 마치 인권 자체에 대한 거부인 것처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는 인권을 옹호하는데 동양은 이것을 억압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가 자신의 관점을 타자에게 강요함으로써 나오는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토착문화의 저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반서구적 이데올로기를 펴는 정치인도 있다. 이들은 서양과 동양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서양에서 발전된 관습이나 제도는 동양사회에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극단화되면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구의 인권 담론을 절대시하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담론의 일면성을 교정하는 새롭고 풍부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서구 문화의 저항은 인간다운 삶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의 차이에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문화주의’(muticulturalism)의 시각이 요구되는 중요한 연구영역의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즉 인권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에 접근해 가는 다양한 문화의 입장을 충실히 따르면서 강제없는 합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