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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와 한시의 거리 - 이옥의 「이언(俚諺)」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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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설명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당대의 사회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몇몇 시인들이 민요풍의 한시를 지었다. 그 시가 민요는 아니었지만, 민요가 지녔던 그 체취를 당시 사대부들의 문자였던 한시로 전하기 위해 그 시인들은 많은 고심을 하였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뤘다. 민요적인 소재를 한자로 써야만 했던 까닭은 민요를 직접 들을 기회가 적었던 양반 사대부 또는 그 주변의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 성과는 어느 정도였는지, 이 글에서 밝혀보려고 한다.

목차/차례

  1. 1. 사랑노래의 흐름
  2. 2. 이언(俚諺)이라는 제목과 민요풍 한시의 흐름
  3. 3. 민요풍 시에 대한 이옥의 이해
  4. 4. 왜 남녀 사이의 정을 노래하였나
  5. 5. 한시와 민요의 거리

본문/내용

기생에게 지어준 사랑노래들이 농염하다면, 아내에게 지어준 사랑노래들은 점잖다. 『홍길동전』에서 홍판서가 용꿈을 꾸고 귀한 아들을 얻기 위해서 부인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부인이 정색하고 “상공이 체위 존중하시거늘 연소 경박자의 비루함을 행코저 하시니, 첩은 봉행치 아니하리로소이다”하고 손을 뿌리쳤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으므로, 그렇게 행동하였던 것이다. 부부간의 실제생활도 점잖았겠지만, 남들에게 보이려고 글로 지어 남긴 경우는 더할 수 밖에 없었다.
기생들이 한시로 지은 사랑노래는 매창의 경우 진솔한 편이고, 재상 김이양을 상대한 부용의 경우는 진솔하면서도 점잖은 편이다. 기생들이 지었다는 시조가 노골적인 것에 비하면, 역시 한시라는 전달수단의 한계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기생 아닌 여성이 사랑노래를 많이 지은 경우는 허난설헌과 김상의당(김삼의당) 정도였는데, 그나마 허난설헌이 한강 서재에 가서 공부하는 남편 김성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기부강사독서(기부강사독서)」는 문집에 실리지도 못했다. 이수광은 그 이유가 “유탕(유탕)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지봉유설』에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시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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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 : JunK*******
Date : 2011-06-25
FileNo : 16039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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