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겉보기엔 답답할 정도로 한없이 어리숙해 보이는 원미동 시인 몽달 씨는 김 반장 같은 속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언제나 시를 읊으며 시처럼 맑게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나 역시 우선은 손해가 될지 몰라도 몽달 씨처럼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내 쪽에서 조금 더 손해를 보며, 남의 이득을 봐도 배 아파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으로 내 주위 사람들을 대했을 때, 그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다. 나에게 매번 못되게 구는 사람에게도 잘해주고, 얄미운 짓을 하는 사람에게도 마냥 친절과 아량으로 일관하기엔 내 인내심이 부족했다. 왜 나만 참고 손해를 봐야하는가. 저 친구는 절대 좋은 인격이 아니다 등등 내가 상대하는 친구들이나 사람에 대해 그들을 사랑과 이해의 눈길로 대하기보다는 비난과 원망이 먼저 튀어나왔다. 물론 내 좁은 소견머리 탓이겠으나.
그래서 작품을 읽는 동안 세상일에 대해 늘 바보 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몽달 씨의 삶이 처음엔 한없이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러나 차츰 몽달 씨가 결국 겉으로 보기엔 무척 바보 같아도 사실 속으로는 이 세상 모든 속물들의 추잡한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현자란 생각이 들었다.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잘난 척, 똑똑치도 못 하면서 똑똑한 척 하는 세상의 속물들을 향해 몽달 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그래, 그렇게 잘 난 척 하더니 결국 너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나!’ 하고 있을 것만 같다.
또 몽달 씨 얘기를 읽으며, 서영은의 소설 <먼 그대> 속의 주인공 ‘문자’ 생각이 났다. 독자가 보기엔 한없이 어리석고 남에게 당하기만 하는 두 인물들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닮은꼴인지. 그래도 두 사람 모두 속물들이 득시글대는 세상에 대해, 보통 사람 이상의 무한한 이해와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점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사족 1: 이 소설의 서술방법은 주요한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