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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닌과 러시아 혁명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적·실천적 오류는 1차대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만 심판을 받은 것은 아니다. 베른슈타인이 정식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을 주창한 이후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도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던 인물이 레닌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러시아의 마르크스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여 33세의 나이에 당의 핵심적 위치에 올라 볼셰비끼를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총 세 차례의 혁명과정을 통하여 누구보다도 마르크스주의를 옳게 견지하고 또한 발전시키면서 급기야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던 인물이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갖는 최초의 운동은 나로드니끼(인민주의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1861년 농노해방이된 후에도 사실상 인민들의 고통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에 분개하며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나로드니끼들은 60년대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70~75년에 ‘브 나로드(인민 속으로)’운동이라 불리우는 농촌계몽 운동을 벌이며, 또 한편으로는 짜르 전제에 반대하는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며 활동해 나갔다. 이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러시아에서는 농촌공동체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굳이 자본주의의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농민혁명을 통하여 바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적 신심을 안고 농촌으로 뒤어든 이들을 농민들이 오히려 적대시하였다. 더구나 나로드니끼들의 외면과는 상관없이, 당시의 러시아에서는 한찬 자본주의화가 진해되어 버렸다.
그들은 79년에 ‘흑토재분배파’와 ‘인민의 의지’파로 분열되었고 인민의 의지파는 극자적 테러리즘을 일삼다가 무너졌다. 그러나 흑토재분배파는 지금까지의 오류를 반성하면서 점차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수용하게되어 마침내 1883년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조직인 ‘노동자 해방단’이 결성되고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