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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은 초기에 침략에서 보다 직접적인 이익을 얻었다. 캐벗(Cabot) 일행은 1496년에 이 이전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의 어떤 섬, 나라, 지역 또는 지방을 막론하고 그들을 찾아내고, 밝혀내고, 발견하기 위해 급히 파견되었다. 그들은 그러한 의도적인 조사를 통하여 이교도의 지역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뉴펀들랜드의 바다에 큰 대구어장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후로는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칼 및 네덜란드로부터 온 어선들이 뉴펀들랜드의 해안에 빈번히 나타났는데, 그 섬은 기지로서 뿐만 아니라 어획물을 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해 말리는 장소로서 이용되었다. 나중에 뉴잉글랜드가 된 지역의 가까운 범위내에 대구가 풍부하다는 것은 유년기의 식민지들에게 인생의 훌륭한 첫 출발이 되었다.
1620년에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에 상륙한 영국 청교도단은 될 수 있는대로 그 고장 고유의 식품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밀과 호밀종자를 가지고 왔었으나 이것들은 그 식민지 개척자들의 서투른 개간 작업 후에 나무 그루터기들이 여전히 총총히 박혀있는 벌판에서는 재배가 잘 되지 않았다. 반면에 옥수수 재배는 용이하였다. 인디언들로부터 그들은 그것을 재배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그것을 12가지의 간단한 방법, 즉 부풀리지 않은 빵(flatbread), 죽, 후루먼티(frumenty) 같은 것으로 요리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들은 또한 친구들이 칠면조를 곧 알아보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 새의 이름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상당히 혼동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것이 매우 적었다. 그 이주자들의 터키(turkey)는 인디언들의 훠키(furkee) 였다.
인디언들로부터 이주민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었이며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해변에서의 대합 구워먹기에 대해서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