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첫째, 천황은 일본인들에게는 심정적 구심점의 역활을 해왔다. 오랜 봉건분할 지배시기에도 일본인들이 하나의 민족의식을 유지해 왔다고 볼 때 이 민족의식을 묶어준 중심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천황이었다고 보인다. 신성을 갖춘 천황이 존재하여 왔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고 그러한 천황은 권위의 원천이었다.
둘째, 이러한 일본의 독특성의 강조는 萬世一係의 天皇이라는 점과 결부되어 일본중심주의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만세일계의 천황의 역사를 가진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덕천시대 후기부터 나타났다. 일본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을 가진 천황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여 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한 국가라는 관념이 생긴 것이다.
셋째, 천황의 권위는 그 종교적 속성으로 인하여 세속정치의 지배자에게 정당성을 제공하는 근원이 되었다. 오랜 막부 지배기간 동안 실권자인 將軍은 천황으로부터 임명되어 세속통치를 위임 받았으며 한편 정치 담당자에게도 편리하게도 천황은 세속통치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기 에
넷째, 최고의 권위자인 천황은 책임의 최종한계이기도 하였다. 큰 사건이 일어나고 그 책임의 한계가 모호할때 정치실권자들은 천황의 뜻으로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무책임의 체계’속에 일본의 정치는 움직여 왔다고 하겠다.
-3세기초의 위지의 외인전을 보면 왜국왕인 히미코는 주술이 전문이고 신격화 되어 있다. 동생이 실제 정치를 하고 히미코의 역할은 정치에 신성성을 부여 하는데 있다. 이렇게 정치와 예언(무당)이 분리 되어 있으면 어떤 실패가 있을 경우 정치가에게 책임을 돌릴수 있고, 금기를 지키지 않았기에 실패했다는 둥의 책임회피가 가능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의 체계위에 군림한 천황에게 당연히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는 이 점이 바로 천황의 전쟁책임의 논거가 된다.
참고문헌
참고문헌:seunghak.donga.ac.kr에서 받은 글.
한국인과일본인3 한길사 김용운 1994 p254-258.
통신에 있는 일본문화에 대한 글들에서 발췌.